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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기원

문자의 기원은 구석기 중기인 BC 50,000년경에 돌이나 뼈에 새겨진 조각에서 시작되어 BC 10,000년경에 회화문자(그림문자)가 발생된 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초기의 회화문자는 기억을 돕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으며, 의사소통으로 사용된 것은 중국,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마야 등 문명이 크게 발달한 지역의 문자를 들 수 있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결승(새끼의 매듭 모양), 막대, 조가비띠 등이 사용된 적도 있었다.

중국의 고대기록에 의하면 "옛날에는 결승으로 다스렸는데, 뒤에 성인이 서계(書契)로 바꾸었다"고 하여, 일정한 약속의 결승으로 서로의 약속이나 의결사항을 보존하였던 것이다. 10세기경의 잉카문명에 도결승제도가 존재했다고 한다. 막대가 기억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용건의 수대로 나뭇가지나 막대 등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가능했으며, 조가비띠도 이와 유사한 기능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들을 문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문자의 구실을 하였으므로 이러한 시대를 <기억보조시대(memory stage)>라 한다.

문자의종류

문자는 유형에 따라 회화문자(繪畵文字, pictogram), 표의문자(表意文字, ideogram), 표음문자(表音文字, phonogram)로 나눌 수 있다. 회화문자는 그림으로 언어의 내용을 나타내는 문자이고 표의문자는 단어의 뜻을 다소 상징적인 방법의 기호로 표시한 문자이며 표음문자는 단어의 요소나 소리를 추상적인 기호로 나타내는 문자이다. 문자 발달상 표음문자가 가장 발달한 단계의 문자이다.

문자의발달

문자의 기원은 회화에서 비롯되었다. 초기의 회화문자는 표현의 대상을 총체적으로 표현하여 언어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 못하였다. 초기단계를 지나 추상화의 단계에 도달하면서 문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집트의 신성문자(神聖文字·hieroglyph)는 표의문자에 가까운 것이었다.

신성문자는 주변에 있는 것으로 수를 나타냈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조의 분묘나 기념비에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돌에다 새기기도 하였다. 추상적인 관념을 표시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혼합적 적용법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소리로 표시하는 글자 위에는 그 뜻을 설명하는 한정부호를 붙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단계를 거쳐 점차 표음문자에 가깝게 발전하였다.

수메르문자도 처음에는 회화문자였으나, 그림의 선이 점차 간단해지면서 이들을 결합한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때로는 동일한 문자에서 몇 개의 다른 문자가 파생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문자들이 동화되기도 하였다. 이를 물려받은 아카드인은 이것을 훈(訓)과 음(音)으로 이용하였으며, 그 지방에서 많이 나는 진흙으로 판을 만들어 글자를 기록했는데 글자의 모양이 쐐기모양이었다. 이것을 설형문자(楔形文字·cuneiform letter)라고 하는데, 후에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로 전파되었다.

중국의 한자도 원래 회화문자에서 출발하였으나, 오늘날 표의문자의 대표적인 문자가 되었다. 청동기에 나타나는 명문과 귀갑(거북의 등)에 나타나는 갑골문자(甲骨文字) 등은 회화문자로 지시대상을 거의 완전하게 그려낸 것이다.

그 후, 이러한 수단이 관습화되면서 지시대상과 표시방법 사이의 완전한 일치가 필요 없게되자, 표시방법도 간략해지고 추상화하여 문자로서의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림으로 표시한 것을 상형(象形)이라 한다.

이 밖에 문자를 다양화하는 방법으로 지사(指事)·회의(會意)·형성(形聲)·가차(假借)·전주(轉注)의 5가지가 있으며, 이들을 상형과 합쳐 육서(六書)라 한다.

표음문자

가장 발달된 단계에 속하는 표음문자는 회화문자가 점차 발전하여 표의문자처럼 되고, 그것이 비유·전용·생략 등의 방법에 의하여 다른 자형을 파생시키고 의부(意符)와 음부(音符)가 구분·발전되어 오늘날처럼 된 것이다.

표음문자는 크게 소리를 음절단위로 표시하는 음절문자(音節文字·syllabic letter) 또는 자모문자와 소리를 음소단위로 표시하는 음소문자(音素文字·phonemic letter)로 나누어진다. 음절문자의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의 가나(假名, 假字)를 들 수 있는데, 중국의 한자가 가진 음절문자적 성격을 순수한 음절문자 체계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집트문자·설형문자 등의 고대문자도 표의문자를 근간으로 음절문자 적용법이 있었다. 음절문자는 이 밖에도 키프로스문자 등이 있다.

음소문자의 대표적인 것으로 로마 알파벳문자와 한글을 들 수 있다. 로마 알파벳문자는 이집트문자를 받아들인 셈문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페니키아문자로 이 문자는 페니키아인들에 의하여 그리스에 전해지면서 결정적인 변화를 보게 되었다.

페니키아문자에는 그리스어에 없는 자음을 가진 음절을 표기하는 글자가 있었다. 원래 모음을 표기하지 않던 그리스어에서는 모음을 표기하는데 이 글자들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 글자는 자음을 표기하게 되어 오늘날과 거의 같은 문자체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음소문자인 몽골·만주문자는 이집트문자를 받아들인 아랍문자가 이란을 통해 위구르에 전승되고 이것을 몽골과 만주가 수용한 것이다.

한글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자음의 기본자를 만들고, 기본자에 획을 더하여 같은 계열의 글자를 만들었고, 모음은 철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천·지·인의 삼재(三才)를 뜻하는 <·>, <ㅡ>, <ㅣ>의 세 글자를 바탕으로 문자를 창제하였다. 거의 모든 나라의 문자가 다른 문자를 빌려서 자기 말에 맞게 고쳐 쓰거나, 변천·개량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으나, 한글은 독창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표음문자이다.

한자

한자는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 고유의 문자로 주변의 여러 민족에게도 채택된 표의문자(表意文字)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베트남 등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서하문자·거란문자·여진문자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문자이다.

한자의 발생은 약 5,000년 전, 전설시대인 삼황(三皇)과 오제(五帝) 때 가공의 인물인 황제(黃帝)의 사관 창힐(蒼詰)이 새와 짐승들의 발자국을 보고 창안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믿을 만한 근거는 희박하다.

실존하는 자료로 가장 오래된 문자는 1903년 은허(殷墟)에서 출토된 은대의 갑골문자가 있다. BC14세기∼BC12세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자는 당시의 중대사를 귀갑(거북의 등)이나 수골(동물의 뼈)에 새겨 놓은 실용적인 것이었다. 그 후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 태사 사주(史籒)가 주문( 文, 大篆)을 만들었고, 춘추전국시대에는 각국에서 또다른 서체가 쓰이다가 진나라의 승상 이사(李斯)가 주문을 개량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어 문자를 통일하였다.

또한 진나라의 옥리 정막(程邈)은 실무에 편리한 예서(隸書)를 만들었으며, 한대에는 이것을 계승한 한예(漢隸)가 통용문자로 쓰였다. 이보다 앞선 선진시대에 죽간에 쓰인 과두문자( 文字:중국 고대에 필묵(筆墨)이 아직 쓰이지 않았을 때 죽간(竹簡)에 옻을 묻혀서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딱딱하고 옻은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글자의 획이 머리는 굵고 끝은 가늘게 되어 마치 과두(올챙이) 모양으로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나 종(鐘)·정(鼎) 등에 쓰인 금석문자를 고문이라고 한다. 후한에 이르러 왕차중(王次仲)은 한예를 간략화하여 해서(楷書)를 만들었고 이후 이것을 정서(正書)라 하여 표준자체로 삼았다.

목독·죽간(대나무·나무에 글을 새기거나 붓으로 써서 내용을 전달한 책)을 대체하여 필기구가 붓·먹·종이 중심의 시대가 되자 해서가 중용되었는데 삼국시대에는 모필로 쓰기에 편리한 초서·행서가 나타났고 육조·당대에는 서도(書道)가 문예의 일부분이 되었다. 한자의 역사, 특히 양식의 변천을 자형에 따라 고찰하면 갑골문자·금석문자·전서·예서·해서의 다섯시대로 구분할 수 있으며, 해서 이후로는 오랜동안 변화의 흔적없이 서체로서 조형예술적인 다양한 작풍이 나타났다.

후한의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문자의 구조용법을 상형(象形)·지사(指事)·회의(會意)·형성(形聲)·가차(假借)·전주(轉注)의 6가지로 나누었는데 이것을 육서(六書)라 하였다. 중국어는 단음절 고립어이므로 한자의 한 글자는 그 1음절을 나타내 표의문자로서 한 글자마다 특정한 말뜻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상형·지사문자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회의문자는 그 합성된 각 요소에 의하여 뜻을 나타내고 형성문자는 그 변에 의하여 암시적인 뜻을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중국어의 음절은 원칙적으로 같은 길이이며 그것은 한글자로 표시되기 때문에 운문을 표기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 예컨대 사언시(四言詩)는 글자도 4개, 음절도 4개이며 의미도 4단위로 되어 있다.

한글

한글은 1446(세종 28)년 9월에 제정하여 공포한 우리나라의 국자(國字)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의 현대적 명칭이다. 훈민정음은 줄여서 정음(正音)이라 하고 속칭 언문(諺文)이라고도 하였으며, 언서(諺書), 반절(反切), 암클, 아햇글, 가갸글, 국서(國書), 국문(國文), 조선글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한글은 1446(세종 28)년 9월에 제정하여 공포한 우리나라의 국자(國字)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의 현대적 명칭이다. 훈민정음은 줄여서 정음(正音)이라 하고 속칭 언문(諺文)이라고도 하였으며, 언서(諺書), 반절(反切), 암클, 아햇글, 가갸글, 국서(國書), 국문(國文), 조선글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글자로서의 훈민정음이 완성된 것은 1443(세종 25)년이었으며, 이것이 제정되자 그 창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하여 궁궐내에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의 해례(解例)와 같은 원리를 연구하게 하는 한편, 그 보급책의 일환으로 「용비어천가」를 짓고 운서(韻書)를 번역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공포하였다.

훈민정음의 제정과 해례의 편찬에는 당시 집현전(集賢殿)의 학사들이 협조하였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며 정음은 「우리나라 말을 정(正)히, 반드시 옳게 쓰는 글」임을 뜻하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체계는 초성, 중성, 종성을 기본으로 합자, 방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훈민정음의 제자(制字) 및 그 결합의 철학적 배경은 천·지·인의 삼재를 말하는 삼극지의(三極之義)와 음(陰)·양(陽)의 이기(二氣)를 말하는 이기지묘(二氣之妙)라는 성리학적(性理學的)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리학적으로 이 삼재와 이기로 우주일체의 사상(事象)을 주재하는 기본이념으로 이해되고, 이 삼재와 음양을 떠나서는 우주일체의 사상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성음(聲音)도 그것이 개념을 표상(表象)하는 그릇이므로, 근본적으로 삼재와 음양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말소리의 체계는 삼재 ·음양의 체계와 반드시 합치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언어관이었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그 음(音)의 분류에 있어서나 제자 원리에 있어서 그 철학적 이론은 모두 이러한 언어관에 입각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와 목적은 훈민정음이란 이름 자체에도 나타나 있으나 세종이 직접 서술한 훈민정음 서문에 『국어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일반 백성이 말하고자 하나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자가 많은 지라,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나니 사람마다 쉽게 학습하여 일용에 편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라고 적고 있다.

각국 문자의 기원과 발달

수메르 문자

수메르인들이 개발했던 초기 상형(象形)문자는 사물의 모양을 간략하게 그림으로 표기한 표의(表意)문자였다. 그러나 상형문자가 처음부터 사물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상형문자의 발달은 BC 5,000∼3,200년 동안에 사용되었던 물표(토큰)의 유통과정에서 유래되었다고 할수 있다.

물표는 조약돌만한 점토덩이로 수메르사람들은 그것으로 물품의 명목가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삼아 형태가 비슷한 점토물표들을 사용하여 물품을 빌려주었으며 그렇게 해서 생긴 물표를 쌓아 보관했는데 이는 상거래의 초기형태이면서 문자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초이기도 하다.

물표를 이용한 경제활동은 BC 3,300년경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되는데 수메르인들은 과거 점토로 봉하던 물표를 토판으로 만들어 그위에 물건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넣고 수효는 그림옆에 일정한 모양으로 찍어넣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물표의 윗모양을 상징하는 문자가 태어났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것이 사물의 모양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그린 상형문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형문자는 오랜시간을 두고 진화한 것은 아니고 BC 3,200∼3,100년 사이에 갑자기 많이 생겼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상형문자의 수는 약 1,000여개에 이른다.

BC 3,100년경 수메르 상형문자는 쐐기모양의 설형(楔形)문자로 발전되는데 점토판에 곡선을 그려넣는 작업이 어렵자 직선으로 된 문자체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필경사들은 점토판에 한쪽끝이 뾰족한 갈대를 이용하여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사물을 그려넣었는데 이 때문에 끝이 삼각형으로 된 첨필(尖筆)이 만들어 졌고 이 첨필의 모양 때문에 설형문자로 부르게 된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BC 600년말 바빌로니아가 멸망된 이후에도 사용되었으며 BC 300년 헬레니즘 시대까지도 일부사제들은 종교적 제의때 필요한 토판을 쐐기문자로 베껴쓰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집트 문자

상형문자는 글자의 뜻을 전하는 표의문자이다. 표의문자를 뜻으로도 사용하고 음절로도 표기하는 것은 수메르 도시국가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동서로 전파되어 BC 2,900∼2,800년의 고대 이집트에서도 이집트식 상형문자를 만들어 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가에 무성한 풀줄기를 이용하여 파피루스를 만들어 그 표면에 갈대붓으로 잉크를 찍어 글자를 기록하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점토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상형문자에서 설형문자로 변하였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림글자를 그대로 유지할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수효는 750여개쯤 되며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를 음절로 사용했듯이 고대 이집트인들도 그들의 상형문자중에서 상당수를 음절로 사용했으며 24개 문자를 알파벳식으로 사용하였다.

그리스 문자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약화체 철자는 이집트뿐 아니라 지중해주변의 여러지역으로 전파되었는데 페니키아 등 북서 셈어권에서는 22개 정도의 자음자(낱자)가 사용되었다. BC 1,200년경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주변지역에서 폭넓게 해상무역을 하였던 페니키아인들의 알파벳 자음자를 차용하여 자기들의 언어로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어는 3근자음의 규칙성을 특징으로 하는 셈어가 아니기 때문에 동사 활용때 단순히 자음만 표기하여서는 문자로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몇 개의 자음은 모음으로 대치하여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BC1,000년경의 고대 그리스 문자부터 자음자와 모음자가 구비된 완전한 알파벳 문자가 탄생하게 된다.

인도 문자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문자는 고대 근동이나 중국보다 늦게 발달했다. 이는 문자로 기록하여 전달하는 것보다 말로써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 더욱 격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베다경전이나 불교의 경전들은 애초부터 모두 암송되어 전해졌다. 심지어 글로 쓴 것은 거룩하지도 않고 신빙성이 없다고 여겼다.

인도지역에서 최초로 등장한 문자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견된 인더스 문자이다. BC 3,000∼2,000년 사이에 생겨났다가 BC2,000∼1,000년 사이에 소멸되었다. 인더스 문자는 대부분 해독되지 않고 있으며 인도지역에서 훗날 발달한 문자들과 어던 관계에 있는지도 알수 없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인도계 문자들의 기원은 브라흐미 문자와 카로슈티 문자에서 찾아볼수 있는데 인도 문자의 발달사는 이 두 문자로부터 파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마 문자

버마 문자는 미얀마의 다수민족인 미얀마족의 미얀마어를 표기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며, 약 4,500만명의 인구가 사용하는 미얀마의 공식글자이다.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는 미얀마족은 BC 2,000∼1,000년 사이에 현재의 중국 감숙성 지방에서 동부 티베트 지방으로 이주해온 것으로 추측된다. 미얀마 문자가 최초로 나타난 것은 12세기초 비문들로 네모진 형태가 많다. 오늘날 미얀마 문자가 대부분 둥근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점을 비교해 보면 형태상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미얀마 문자는 21개의 모음과 32개의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교적 단순한 인도계 문자나 몬 문자의 모음들과 달리 복잡한 체계를 갖고 있다.

크메르 문자

크메르 문자는 캄보디아의 공식언어인 크메르어를 표기하는 글자이다. 크메르어는 다양한 언어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행정·군사·문학·종교적 언어들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상당 부분이 차용되었으며 13세기이후 소승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많은 팔리어 단어들을 차용했다. 19세기 중엽이후 시작된 프랑스 식민통치기간에는 프랑스어 단어들이 특히 도시지역에서 사용되는 구어체 크메르어에 도입되었다. 또 중국어와 베트남어에서 온 단어들도 적지 않았다.

타이 문자

타이 문자는 태국에서 타이어를 표기하는데 쓰이는 글자이며 ,라오 문자는 라오스에서 라오어를 표기하는데 쓰이는 글자이다. 타이어와 라오어는 타이-카다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형태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매우 비슷하다. 타이문자와 라오 문자는 모두 팔라바 문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먼저 등장한 것은 타이 문자이다.

태국인들은 13세기말 람캠행 왕이 타이 문자를 창제했다고 믿고 있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람캄행 왕 비문에 나타나 있는 문자는 이미 그 이전부터 발달되었던 타이 문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음성학적으로 풍부한 타이어는 32개의 모음과 44개의 자음을 갖고 있는데 비해 라오 문자는 16세기초부터 철자법을 단순하게 정리하기 시작하여 28개의 모음과 27개의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어 타이 문자에 비해 글자수가 훨씬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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