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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글 # # #
제11월호 위기의 고속도로에서 만난 천사
위기의 고속도로에서 만난 천사
이영미(서원구 죽림동)
출장 갔다 오는 길. 해가 지고 있는 저녁 무렵,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의 속도가 점차 떨어졌다. 중증청각장애인이라 평소에 차의 부품들이 소진돼 가도 그 소리를 감지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는데, 이번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속도가 계속 떨어졌다. 남청주 진입 톨게이트에 거의 다 왔을 무렵에는 속도가 30km로 급속히 떨어졌고 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급히 비켜갔다.
조심, 조심 1차선에서 2차선으로 또 3차선으로 옮겼지만, 갓길까지 가지 못하고 3차선에 급기야 차가 멈추었다. 전화를 못 하니 딸과 수화 통역사에게 급히 문자를 보내 긴급서비스센터 연락해달라고 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문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차 안에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차 밖으로 나와 코트를 흔들면서 비켜가라는 신호를 했다. 너무 무서웠다.
그때 봉고차 한 대가 내 차 뒤에 멈췄다. 서툰 발음으로 상황을 이야기하니 직접 긴급서비스센터로 전화를 걸어주셨고 마침 남청주 가까운 곳이라고 10분 후 도착한다고 했다. 그분은 나보고 갓길로 가 있으라고 하고 본인은 아주 능숙하게 봉고차에서 야광 삼각대를 꺼내 30m 떨어진 곳에 세우고 야광등으로 차들이 비켜가도록 수신호를 했다.
고속도로 운전자들이 전방을 멀리서 잘 주시하지 않으면 삼각대와 봉고차 그리고 내 차와 충돌할 가능성이 많은 위기의 순간이었는데, 그 아저씨는 열심히 수신호를 했고 마침내 레커차가 와서 내 차를 갓길로 대피시켰다.
나를 도와준 그분이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라도 선물을 보내드리고 인사를 하려고 명함이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는데 “괜찮다”고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하면서 그냥 떠나셨다.
가끔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볼 때마다 그리고 고속도로 주행을 할 때마다 그분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의 위험을 보고도 그냥 스쳐 가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인데도 본인의 갈 길을 멈추고 위기의 순간에 놓인 청각장애 운전자에게 도움을 준 천사 같은 분.
이름도 모르는 그분의 얼굴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이 나고 그 상황도 떠오른다. 나에게 그분을 천사처럼 보내주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하느님이었을까. 이웃을 돕는 봉사를 많이 하신 부모님의 덕업이 알게 모르게 쌓여 내가 은혜를 입었던 것일까.
그때의 사건을 계기로 나는 천사가 따로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에, 우리처럼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기의 고속도로에서 도움을 주고 스쳐 간 은인. 그분이 부디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한다.
내리사랑
황경자(흥덕구 복대동)
“엄마 다녀올게요.”
딸아이는 아침밥도 못 먹고 허둥지둥 현관문을 나선다. 아침 대용으로 사과 하나를 가방에 넣고 정신없이 출근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측은한 생각이 든다. 청주에서 세종까지 먼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위험한 차들 속을 달려야 하는 딸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서로 가슴속 깊이 묻어둔 말을 할 수 있는 딸, 내 가려운 곳을 잘 알고 긁어줄 수 있는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관계가 딸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바쁜 딸을 위해 얼마 전부터 내 스스로 딸네 집을 오가며 집안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퇴근 때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딸을 보면 내 몸의 피곤은 어디 갔나 찾을 수 없고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부모의 마음이 자식을 향해 다 그러지 않을까. 내리 사랑은 있어도 올림 사랑은 없다지 않던가.
여덟 살짜리 손녀딸 등하교 시키는 일부터 산더미 같은 빨래, 설거지, 청소가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아침이면 잠이 덜 깬 손녀딸은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TV만 보고 있다. 먹기 싫어하는 밥을 몇 숟갈 떠먹이고 옷 입히고 머리 빗겨서 책가방을 들고 부랴부랴 학교로 향한다.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가는 아이들을 부러운 듯 자꾸만 쳐다본다. 다른 아이들처럼 이 아이도 엄마와 같이 손잡고 학교에 가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며 아이를 쳐다보니 측은한 생각에 괜한 눈물이 핑 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요즘 세상에 제 어미가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니. 나도 젊을 때 직장 생활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애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었다. 한창 부모의 도움이 필요했던 어린 나이에 학교에서의 준비물조차 챙겨주지 못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온다.
종일 얼굴을 부비며 그 시중을 다 들어주어도 제 어미가 퇴근해 오면 “할머니는 이제 그만 집에 가라”며 등을 떠미는 손녀 때문에 서운할 때도 있다. 손녀딸과 여러 날을 지낸 시간이 많아서인가 요즘엔 우리 집에서 같이 자고 가지 말라며 팔을 붙들고 늘어질 때면 서운했던 감정은 어느새 다 녹아든다. 그래도 내 집이 편하고 좋아 미련 없이 돌아서서 현관문을 나서는데 손을 배꼽에 대고 “할머니 넘어지지 말고 조심해서 잘 가야 돼~” 하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앙증맞게 인사를 한다. 부쩍 자란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해 다시 뒤돌아서서 아이를 한번 꼭 안아 주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함에 감사하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행복하다.
어스름한 골목길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려 내 포근한 둥지로 향한다. 아이와 보낸 하루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에 어리는데 하늘엔 손녀의 눈망울 같은 하얀 별들이 반짝인다.
제11월호 이달의 ‘바꿔 쓰면 좋은 말’ 성불평등 용어를 성평등 언어로!
이달의 ‘바꿔 쓰면 좋은 말’ 성불평등 용어를 성평등 언어로!
성차별 언어 유모차
성평등 언어 유아차
유모차에는 여성에게 육아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으므로 유아가 중심이 되는 표현 '유아차'로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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