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서원구 죽림동)
출장 갔다 오는 길. 해가 지고 있는 저녁 무렵,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의 속도가 점차 떨어졌다. 중증청각장애인이라 평소에 차의 부품들이 소진돼 가도 그 소리를 감지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는데, 이번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속도가 계속 떨어졌다. 남청주 진입 톨게이트에 거의 다 왔을 무렵에는 속도가 30km로 급속히 떨어졌고 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급히 비켜갔다.
조심, 조심 1차선에서 2차선으로 또 3차선으로 옮겼지만, 갓길까지 가지 못하고 3차선에 급기야 차가 멈추었다. 전화를 못 하니 딸과 수화 통역사에게 급히 문자를 보내 긴급서비스센터 연락해달라고 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문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차 안에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차 밖으로 나와 코트를 흔들면서 비켜가라는 신호를 했다. 너무 무서웠다.
그때 봉고차 한 대가 내 차 뒤에 멈췄다. 서툰 발음으로 상황을 이야기하니 직접 긴급서비스센터로 전화를 걸어주셨고 마침 남청주 가까운 곳이라고 10분 후 도착한다고 했다. 그분은 나보고 갓길로 가 있으라고 하고 본인은 아주 능숙하게 봉고차에서 야광 삼각대를 꺼내 30m 떨어진 곳에 세우고 야광등으로 차들이 비켜가도록 수신호를 했다.
고속도로 운전자들이 전방을 멀리서 잘 주시하지 않으면 삼각대와 봉고차 그리고 내 차와 충돌할 가능성이 많은 위기의 순간이었는데, 그 아저씨는 열심히 수신호를 했고 마침내 레커차가 와서 내 차를 갓길로 대피시켰다.
나를 도와준 그분이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라도 선물을 보내드리고 인사를 하려고 명함이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는데 “괜찮다”고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하면서 그냥 떠나셨다.
가끔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볼 때마다 그리고 고속도로 주행을 할 때마다 그분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의 위험을 보고도 그냥 스쳐 가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인데도 본인의 갈 길을 멈추고 위기의 순간에 놓인 청각장애 운전자에게 도움을 준 천사 같은 분.
이름도 모르는 그분의 얼굴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이 나고 그 상황도 떠오른다. 나에게 그분을 천사처럼 보내주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하느님이었을까. 이웃을 돕는 봉사를 많이 하신 부모님의 덕업이 알게 모르게 쌓여 내가 은혜를 입었던 것일까.
그때의 사건을 계기로 나는 천사가 따로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에, 우리처럼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기의 고속도로에서 도움을 주고 스쳐 간 은인. 그분이 부디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