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서원구 사창동)
얼마 전 도로가에 새 얼기미가 재활용 물건과 같이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가지고 집으로 오면서 반갑기도 하고 옛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고향은 가뭄이 들면 물이 마르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시골 마을이다. 가뭄에 대비하여 논마다 샘을 파놓고 농사를 지었다. 논바닥에 물이 마르면 고기들이 웅덩이나 샘으로 몰려들어 물을 두레박으로 퍼내고 새뱅이, 피라미, 미꾸라지, 방개를 잡았다.
물이 고여 있는 곳에는 새뱅이, 피라미가 몰려있어 잘 잡혔다. 물 고일 곳이 없는 논배미에는 미꾸라지와 미꾸리가 몰려있었다. 삽으로 파 힘 빠진 고기를 주워 넣어 많은 양을 잡기도 하였다.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 시집온 두 형수와 같이 살았었다. 날 예뻐해 주는 두 형수님을 무척 좋아해 잘 따랐다. 아침, 저녁으로 된서리가 내리고 김치 담기와 가을걷이가 끝난 한가한 틈을 이용해 새뱅이 잡기를 가끔 하였다. 두 형수는 얼기미를 하나씩 들고, 나는 종다래끼를 메고 형수님 뒤를 따라 다녔다.
보통은 먹을 만큼 잡혔으나 새뱅이와 미꾸리를 종다래끼 가득 잡을 때도 있었다. 가마솥에 무를 가득 썰어 넣고 끓여낸 새뱅이 찌개는 붉은색이 나며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는 특별한 별미로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찌개였다. 참 맛있다고 하시며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드시는 모습이 옆에 계신 듯 떠오른다.
우리 마을에는 ‘쳇 돌이’라는 풍습도 있었다. 설이 지나 정월 대보름이 되면 한해 평안을 위한 치성 떡인 시루 켜 떡을 만들어 나눠 먹었는데, 떡 중앙에 물을 대접에 떠다 놓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고사를 지냈다. 쳇 돌이란 마을 어린이들이 얼기미를 들고 집집을 돌며 떡을 얻어오는 것을 말했다.
속담에 쳇 돌이 떡을 먹으면 그해를 건강하게 지낸다고 한다. 옛날에는 모두가 잘살아 즐거운 명절을 보내지를 못하고, 끼니를 걱정하는 가정도 꽤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서 떡을 얻어다 밤참으로 먹기도 하지만, 떡을 못 해 먹는 가난한 가정에 주인 모르게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가 부뚜막에 떡을 놓아주는 풍습이 있었다. 가난해 떡을 못 먹는 가정을 배려한 의미도 있지만, 왜 하필이면 일반 그릇도 많은데 얼기미에 떡을 받아 들고 다녔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요즘에는 얼기미가 별로 필요 없는 세상이다. 항상 튼튼한 것으로 준비해 애용하고 아끼시던 옛 분들이 살아계신다면, 쓰지도 않고 버려진 새 얼기미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어릴 적 얼기미를 들고 떡을 얻으러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생각 난다. 지금은 호호백발이 돼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보고 싶다.
우리말 산책
얼기미 구멍이 널찍한 체. ‘어레미’의 방언으로 지역에 따라
얼레미, 얼맹이, 얼개미라고 부름.
종다래끼 짚이나 싸리로 만든 작은 바구니.
논배미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하나하나의 구역.
새뱅이 시골 도랑에서 잡히는 작은 크기의 민물 새우.
미꾸리 미꾸라지와 비슷한 생김새로 계곡, 하천 등을 가리지 않고 서식하는 민물고기.
※ 독자의 글을 충실히 전달하고자, 지역 방언과 옛 표기를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