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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글 # # #
제9 월호 작지만 소중한 머리카락
작지만 소중한 머리카락
이세진(흥덕구 복대동)
이제 막 체크인 하고 들어간 호텔 침대 시트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됐을 때, 머리 감고 하수구에 낀 머리카락을 청소할 때, 음식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나올 때, 청소기를 돌리며 바닥에서 발견되는 머리카락을 바라볼 때.
우리 머리에 붙어있던 소중한 머리카락은 어느새 더럽고, 필요 없는 불쾌한 존재가 된다. 나에게도 머리카락은 내 두피에서 떠나는 순간 버려지는 쓰레기 같은 의미였다. 모발 기부에 대한 마음을 먹기 전까지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비벼 뭉쳐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TV에서 우연히 소아암 환우들에게 가발을 만들어주는 사회적 단체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사실 피부 알레르기가 있어서 머리카락이 피부에 닿으면 발진이 생겨서 잘 기르지도 못하는데도,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나도 누군가를 위해 모발 기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먼저 한 일은 당연히 머리를 기르는 일. 기존에 염색한 부분이 있어서 1년 넘게 길러서 모두 제거했다. 가발을 만드는 모발은 열처리를 거치는데 염색 모발은 손상된 경우가 많아서 원재료로써 탈락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순서는 머리를 곱게 건강하게 잘 기르는 일이다. 영양 섭취도 잘하고, 일상생활에서 머리카락 손상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머리를 자르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버텨내기를 2년 남짓. 드디어 미용실 예약을 하고 머리를 자르러 갔다. 미리 모발 기부 예정임을 알리고 머리를 묶어서 25cm 이상 길이를 맞추고 매듭 윗부분을 잘라냈다. 툭 떨어져 나간 머리 묶음은 더 이상 내 것도 아닌 불쾌한 쓰레기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쇼트커트가 된 머리, 낯선 느낌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미용실을 나와 우체국으로 향했다. 머리카락 묶음을 봉투에 담아 ‘어머나운동본부’에 소포를 보내기 위해서다. 머리카락 묶음을 들고 인증 샷을 찍고 곱게 정성껏 기른 내 머리카락이 소아암 환우들에게 힘이 돼주길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기부를 다짐하고 난 뒤부터 내 일상에 행복한 일이 많았다. 대단한 사건이 발생한 건 아니고 소소한 일상에 행복함이 많았다는 뜻이다. 소소했던 행복과 즐거운 감정들이 가득했던 기억들이 내 머리카락에 기록되어 머리카락을 전달받은 환우에게도 그 좋은 기운들이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는 게 자원이다. 머리카락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흔한 머리카락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모발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머리카락과 나눌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제9 월호 손자와 맹맹이
손자와 맹맹이
황경자(흥덕구 복대동)
올해 네 살인 손자 재율이와 아침마다 전쟁을 벌인다. 얼마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재율이는 아직 적응 기간이라 손을 꼭 잡고 안 떨어지려고 한다. 억지로 들여 보내놓고 뒤돌아서면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떨어져 모두가 낯선 곳에 적응하기란 아이한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면 괜찮겠지 했지만 거의 한 달이 되가는데도 어린이 집 앞에만 가면 삐죽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매정하게 떼어 들여 보내놓고 뒤돌아서는 이 할미도 속으로 울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날엔 어린이집에서 계속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겨 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식구들과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아이가 낯선 곳으로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두려워, 떠나갈 듯한 울음으로 대신하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아직도 눈물 젖은 아이의 촉촉한 속눈썹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문득 어릴 적 외양간에 사다 놓은 송아지 ‘맹맹이’가 생각이 났다. 머나먼 시골장에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온 맹맹이는 어미에게서 떨어져 사오리길을 이끌려오며 음매음매 울었다.
새끼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이별에 어미소의 새끼 찾는 소리 또한 어떠했을까. 그날 밤 들녘까지 울리는 애절한 울음소리에 온 식구들은 밤잠을 설쳤다. 맹맹이는 사립문 쪽을 바라보며 아침까지 그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밤새 울어대던 맹맹이는 목소리까지 잠겼다.
이삼일이 지나고 어느 정도 애를 삭인 그 울음은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모든 걸 포기했는지 조금씩,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세월을 먹고 자란 맹맹이는 어느새 늠름한 큰 누렁이가 되어 있었다.
의사표현을 말로하지 못하는 맹맹이나 손자 아이나 머물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애달픈 울음으로 대신 했으리라. 하원할 때 펄쩍펄쩍 뛰며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아이는 서너 시간 떨어졌지만, 몇십 년만에 만나는 듯 할미 품에 안겨 꼭 끌어안고 둘이서 기쁨을 나눈다. 처음보다는 좀 적응하는 듯해서 마음이 놓인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내리라 믿는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든 천사 같은 아이를 바라보니 요즘 부쩍 자란 듯하다. 아무쪼록 세상 밖으로 첫 날갯짓 하는 아이가 씩씩하고 건강한 아이로 잘 자라 주었으면 하는 이 할미의 간절한 소망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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