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숙(수곡1동)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무릎에 무리가 가는 직종으로 옮긴지 6개월이 넘은 시점이다. 근무 초창기에 갑작스레 무거운 것을 많이 옮기는 일을 했다. 당시에 무릎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있었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괜찮아져서 방치해 둔 것이 화근이었다. 날이 갈수록 무리가 가는 자세가 빈번하게 되자 급기야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특히 오른쪽 무릎이 심하게 아팠다.
무릎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정형외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엑스레이상 소견이 안좋아서 MRI를 찍었다. 나의 무릎은 예상보다 심각한 관절염이 진행되고 있었고 반월상 연골도 손상이 있었다. 종내는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게 되었고 1주일간 입원후 퇴원을 하였다.
수술이 연골재생술이어서 무릎을 움직이면 안되었기에 퇴원을 했어도 나는 여전히 환자 신세였다. 허벅지부터 발가락까지 깁스를 했기 때문이다. 깁스는 무거워서 이동하는 자체가 거의 고문 수준으로 힘겨웠다.
1인 세대라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데 특히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가는 일이 힘들었다. 박스 등은 모아놓았다가 방문하는 지인이나 동생에게 버려달라 할 수 있는데 매일 발생하는 음식쓰레기가 고민이었다. 3주일을 더 깁스상태로 있어야 하고 깁스를 푼 다음에도 재활 2개월은 지나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니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퇴원 후 첫날, 비닐봉투에 음식물쓰레기를 담아 한 손에 들고 목발을 짚고 내려가는데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계단이, 움푹패인 바닥이, 튀어나온 보도블록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오른쪽 발은 힘이 주어지지도 않고 힘을 가하면 아프고…. 거북이 걸음으로 다녀오는 길이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었다.
어느날은 목발의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도와주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인사를 드렸다.
며칠 내려가다 보니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힘들다. 주차장의 보도는 약간 좁아서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조금 넓은 뒷길로 다니는데 어느날인가 돌부리에 목발이 걸려서 넘어질 뻔 했다. 이 상황에서 넘어지면 어떤 결과가 올거라는 것을 알기에 목발이 휘청할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깁스를 푼 지금도 나는 환자다. 목발 없이는 무릎에 힘이 없어서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천천히 또 천천히 모든 나의 일상은 천천히 진행된다.
병원 방문 등으로 외출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 길가에 힘겹게 천천히 걸어가는 어르신을 볼 때가 있다. 물론 연로한 내 어머니도 구부정한 어깨로 천천히 걸어다닌다. 내가 천천히 걸어다니게 되자 어르신들의 힘겨움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어르신들의 힘겨움이 가슴에 들어왔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씩씩하게 당당하게 걸어 다닐 때 그때는 어쩌면 거만한 마음에 어르신들을 답답하다며 지나치곤 했었는데 이제 앞으로는 보행이 힘든 모든이 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서 다행이다. 아픈 만큼 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도 천천히 걷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