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향기

국화이야기

전통과 문화가 숨쉬는 곳 낭성
국화꽃향기 국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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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이야기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역사가 오랜 꽃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국화는 원산지가 중국이어서 그런지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 우아한 꽃의 기품과 추위를 이겨내는 강인함은 곧잘 충신의 절개와도 비유되어 동양에서 사랑을 받아 왔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대나무, 국화를 이르는 말이다. 매화는 이른봄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고, 난초는 향기가 있고 잎과 꽃이 아름다워서 좋아하던 식물이었다. 그리고 대나무는 잎이 항시 푸르고 줄기가 꼿꼿하여 절개를 상징하던 식물이었다. 반면에 국화는 꽃도 아름답지만 향기가 매우 짙어 사랑 받던 식물이었다. 국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3000년 전 중국의 [주례기]에 있는 牡鞠(모국) 이란 말인데 확실하게 어떤 꽃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를 않다. 그러나 그 이후 기원전 256년부터 49년까지 기록된 [예기]라는 문헌에 의하면 ’황색의 꽃’이라는 설명이 있고 또 鞠자와 菊자는 한자의 발달에 의하면 같은 글씨로 여겨지므로 국화는 2500년-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가꾸어 오다가 우리 나라를 거쳐 일본 등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의 한 고조 때의 [서경잡기] 에서는 중양절(음력 9월9일)에 국화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중양절에 관련되어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옛날에 장방 이라는 현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근항경이라는 사람에게 한 가지 예언을 하였다. "금년 9월 9일 자네의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네. 이 재앙을 막으려면 집안 사람 각자가 주머니를 만들어 주머니 속에 산수유를 넣어서 팔에 걸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술을 마시면 화를 면하게 될 것이네." 근항경은 장방의 말에 따라 그날 집을 비우고 가족들과 함께 뒷산으로 올라 갔다. 그리고는 장방이 말한대로 국화술을 마셨다. 집에 돌아와 보니 닭이며 개, 소, 양, 돼지 등이 모두 죽어 있었다. 장방은 이 소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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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짐승들은 사람 대신 죽은 것이었다네. 국화술이 아니었다면 자네 식구들은 모두 죽었을 거야." 9월 9일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술을 마시거나 부인들이 산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9월 9일이 양수(陽數)인 9가 겹친 날이기 때문이었다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중양절에 산수유주머니를 차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는 중양연(重陽宴)을 행했다고 한다.

중국 남양의 여현이라는 곳에 있는 감곡 개천 상류에 국화가 자생하고 있었는데, 그 액수를 먹고 사는 하류의 마을 사람들은 보통 120-130세까지 장수를 하였고, 仙人 팽조는 아침마다 국화이슬을 마셔 무병장수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이 외에도 국화주를 마시고 장수했다는 많은 설화들이 있다. 이것이 국화주를 연명주(延命酒) 또는 불로장생주(不老長生酒)라 하는 이유이다. 후한 때의 종회가 노래한 국화의 오미나 도연명의 귀거래사 등에 비추어 짐작할 수 있으며, 이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중국에서는 국화를 약초로서도 권하고 있어 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 당나라 때는 중양절에 건강을 기원하며 국화이슬로 몸을 닦고 귀신을 쫓으며 재난을 피하려는 뜻에서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생겨났으며 후세까지도 전해진다고 한다. 약효를 알 수는 없지만 해롭지 않고 신선한 자연의 기운을 섭취한다는 점에서 해봄직한 풍류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중국 사람들의 국화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국화의 품종과 재배 기술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이후의 수많은 기록에도 국화에 관해 많이 전하여진다. 우리 나라의 국화 종류는 300여종 정도가 있는데 서로 교배되어 정확한 분별은 어렵다. 국화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충숙왕이 원나라에 들어가서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를 들어 본국으로 돌아올 때 원나라의 황제가 천하의 진귀한 화초를 많이 주었는데 그 중에 국화도 있었다 라는 기록을 [양화소록]에서 볼 수 있다.

《양화소록》에 국화는 고려 충숙왕 때 전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때 국화에 대한 중국의 문화적 인식과 관념도 그대로 전해졌다. 국화, 특히 황국(黃菊)은 신비한 영약으로 이를 달여 마시면 장수한다고 믿어 왔으며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환갑·진갑 등의 헌화로도 사용하였다. 예로부터 중양절에 국화주를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였는데 고려가요 《동동》의 9월령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 역사는 오래되었다.

또한 백국(白菊)의 즙을 넣은 선약을 일정(日精)이라 하여 불로장수약으로 여겼다.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비겼으며,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이 국화를 예찬한 데서 군자와 국화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