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동(江西洞)
청주군 서강내 일하면서의 지역으로 용이 승천했다는 큰 우물이 있어서 샘미마, 용정(龍井)이라고 하였으며, 1914년 중암리(中岩里), 석담리(石潭里), 봉산리(鳳産里), 호암리(虎岩里), 반송(盤松里)리 일부와 주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하였다가 강서면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청주시로 편입되면서 강서동으로 명칭을 고쳤다.
동막동(東幕洞)
동막동은 시의 최남서단에 있으며 본래 청주군 서강내 일하면의 지역으럿 움막을 짓고 살았다해서 동막이라 칭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룡리(五龍里)와 현암리(玄岩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막리라고 칭하여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편입되었다.
비하동(飛下洞)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피아골', '피하골' 등으로 불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정책에 따라 도동(道洞)·동양리(東陽里)·주봉리(周峰里)·반송리(盤松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비하리(飛下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편입되었다.
서촌동(西村洞)
서촌동은 시의 서부에 있으며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마을이 동서(東西)로 나뉘어 있는데 이곳이 서쪽에 해당되어 서촌(西村)이라 한 것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정책에 따라 동촌리(東村里)·내거리(內巨里)·신흥리(新興里)·신기리(新基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서촌리(西村里)라 하여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청주시 편입되었다.
석곡동(石谷洞)
석곡동은 시의 서남부에 있으며 청주군(淸州郡) 남차이면(南次二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서 석실리(石室洞) 아래쪽이 되므로 석실 또는 석곡(石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정책에 따라 중석곡(中石谷), 하석곡(下石谷), 공례리(公禮里), 북리(北里) 일부를 병합하여 석곡리(石谷里)라 해서 남이면(南二面)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청주시 편입되었다.
석소동(石所洞)
석곡동은 시의 서남부에 있으며 청주군(淸州郡) 남차이면(南次二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서 석실리(石室洞) 아래쪽이 되므로 석실 또는 석곡(石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정책에 따라 중석곡(中石谷), 하석곡(下石谷), 공례리(公禮里), 북리(北里) 일부를 병합하여 석곡리(石谷里)라 해서 남이면(南二面)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청주시 편입되었다.
수의동(守儀洞)
수의동은 시의 서남부에 있으며 청주군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절의(節義)를 지킨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수절(守節), '숫절', 수의동(修義洞)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정책에 따라 강상리(綱常里)·부동(釜洞)·정상리(井上里)를 병합하여 수의리(守儀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청주시 편입되었다.
신전동(薪田洞)
신전동은 시의 남서부에 있으며 청주군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섶'이 무성한 지역이어서 '섶밭', '섶배일', 신전(薪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정책에 따라 추동(楸洞), 소정리(蘇亭里), 현암리(玄岩里) 일부를 병합하여 신전리(薪田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청주시 편입되었다.
신촌동(新村洞)
신촌동은 시의 서부에 있으며 청주군 서강내이하면(西江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새말' 또는 신촌(新村)이라 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정책에 따라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의 신촌리(新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신촌리(新村里)라 해서 사주면(四州面), 강내면에 편입되었고, 1987년 강서1동에 편입되었다.
정봉동(丁峰洞)
정봉동은 시의 서북부에 위치하여 청주군 서강내이하면(西江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지형이 고무래 '정'(丁)자처럼 생겨 정봉(丁峰)이라 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학동리(鶴東里) 일부를 병합하여 정봉리(丁峰里)라 명명하고 강내면(江內面)에 편입되었고, 1987년 강서1동에 편입되었다.
지동동(池東洞)
지동동은 시의 서부에 있으며 청주군 서강내 일상면의 지역으로서 큰 못이 있으므로 '못골', '목골', 지동(池東)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동원리(東園里)·지서리(池西里)·신기리(新基里)·비하동(飛下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지동리(池東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청주시 편입되었다.
현암동(玄岩洞)
시의 서남단에 위치하며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마을 앞에 검은 바위가 있어서 '검배' 또는 현암(玄岩)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고락리(古樂里)와 이교리(泥橋里) 일부를 병합하여 현암리(玄岩里)라 해서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청주시 편입되었다.
휴암동(休岩洞)
시의 서부에 위치하며 청주군 서강내 일면하면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동(新洞), 은곡(隱谷), 신촌리(新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휴암리(休岩里)라 해서 강서면(江西面)에 편입 한 후 1983년 2월 청주시 강서1동에 편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