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충동 유래
모충동(慕忠洞)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월교리(越橋里), 화청리(華淸里), 화동리(華東里), 수곡리(秀谷里), 보십리(甫十里) 일부 및 서주내면(西州內面)의 화흥리(華興里)를 병합하여 화흥리(華興里)라 이름짓고 사주면(四州面)에 속하였다.
1935년 청주읍에 편입하였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을 폐지할 때 이곳에 있는 모충사(慕忠祠)에 근거하여 모충동(慕忠洞)으로 바꾸었다
모충동 옛지명
고당
모충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무심천변 언덕 위에 위치한다. 비교적 높은 지대인 이곳에 당집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높다의 '高'나 오래되었다는 '古'로 볼 수 있다.
핑구골
고당 예전 모충사 밑에 있던 골짜기이다. 피천거리에서 고기 장사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핑구'는 '빙고'(氷庫, 얼음 창고)의 변형으로 '핑구골'은 '빙고가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배티/배티마을/연배티(延-)
모충동에서 개신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형성된 마을. 전에 이 고개에 배나무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배티말', '바랑골', '안말', '새터'를 함께 이르기도 한다. 이곳에 곡산연씨가 모여 살던 곳이라 '연배티'라 하기도 한다.
샴골/샘골
구룡봉 밑에 있던 골짜기이다. 지금의 그린맨션 자리가 된다. '샴골'은 '샘골'의 변형이다. '샘골'은 샘이 있는 골짜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이곳의 생수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정문안말(旌門-)/안말
'정문안말'은 정문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정문'은 연최적(延最績)의 충효양전문(忠孝兩全門)의 정문(旌門)을 가리킨다. 이 '정문' 안쪽에 있는 마을이 '정문안말'이다. '정문'을 생략하고 '안말'이라고도 한다.
바랑골/바람골
정문안말 위쪽에 있는 마을로 일명 '바람골'이라고도 한다. 골짜기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벼랑'이 '바랑'으로 변형된 것이다.
새터/새태
바랑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모충사 밑이 된다. 새로 조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쌍샘/ 쌍샘골
서원대학교 북문 아래 지역에 해당한다. 샘 이 쌍으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장골
'지장골'은 서원대 남문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대체적으로. 이곳에 '지장사'라는 절이 있던 골짜기라 이런 지명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기장'(볏과의 한해살이풀)의 변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벌터
현재의 운호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마을이다. 벌판에 새롭게 조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로 일군 터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벌터'라고 한 것이다.
남들(南-)
청주의 남쪽에 펼쳐져 있는 들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땅이 비옥하고 수리(水利)가 편리한 곡창 지대였으나 지금은 택지로 개발되어 주택가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