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리

세계속의 관광도시 문의
문의면소개 마을안내 남계리

문의면 남계리를 소개합니다.

위치

남계리 마을사진

남계리는 문의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청주 신탄간 국도변과 청원 인터 체인지 도로변 마을로 동은 가덕면 국전리, 서는 도원리, 남은 미천리, 북은 화당리에 접해있다.
면의 최북단에 있는 마을로 남쪽 작두산 북사면 산려지역에 발달한 마을로 북은 남일면과 남이면을 경계로 하고 있다. 마을의 주된 부락은 원남계마을이며 동남쪽은 방죽골이 있고 방죽골(성북) 동남쪽에는 장자골(성남)이 있고 남서쪽에는 수여마을이 있다. 현재 28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연혁

남계리는 본래 문의군 북면의 지역으로 청주의 남쪽이 되므로 남계리라 하였는데 1910년 경술국치 직전에는 남계 수여 성북 화산리로 이루워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으로 수여리, 성북리, 화산리, 성남리 일부와 동면의 하대리와 청주군 양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에 다시 문의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

  • 성남(장자골) : 藏財고을이 줄어서 불리게 된 지명. 마을 뒤 작두산의 내리 야산이 좌우로 부락을 둘러쌓고 있어 산태미 형이라고 하며 보성오씨의 집성촌으로 마을 앞들에는 비옥한 철량들(남들)있고 그곳에서 많은 재화가 들어오나 부락이 산태미형으로 재화를 모아 한번에 버리는 형이라 그 액운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을 이북에 가지 많은 버드나무를 식재하여 액운을 막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 성북(방죽골) : 남일 신송에 살던 회덕 황씨가 임진왜란으로 피난하여 처음에 갯골에 정착하여 현재의 성북으로 이주하였다는 곳. 부락 앞에 둥그런 저수지가 있어 방죽골이라 불린다. 오래전에 마을 앞 저수지 내에 둥그런 섬에 향나무를 심고 마을에 평온을 비는 수살제를 지냈는데 일제시대 저수지를 확장한다는 명분으로 파냈다 한다.
  • 원남계 : 청주시의 최남단에 위치한 계곡이라 남계리라 하고 한, 박, 배씨 등의 성이 부락을 형성했다. 부락이 한곳에 모여있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부락이다. 남계리의 주된 부락이다.
  • 화산(상지말) : 원남계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산수가 아름다워 부른 지명. 송씨의 묘소를 관리하는 부락으로 山支말을 말한다. 조선시대 참판을 지낸 송인수(宋離壽)의 묘가 있다.
  • 한옥마을 : 1981년 조성된 마을로 우리나라 전통 한옥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당시 15호를 건축 대청댐지역의 관광지에 알맞는 시범부락으로 조성되었다.
  • 수여(水餘) : 장차 물이넘는 고개라해서 부른 지명이다. 무너미 고개의 마을을 말한다. 이조 중엽의 고승 정진선사가 불당의 법전을 찾기 위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머물며 예언한 곳으로 물이 넘는 무너미 고개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현재 대청댐의 물이 이곳을 통과하여 청주시의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물이 넘쳐 흐르는 쉬논 자리가 많다해서 붙인 지명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국제공항 관리공단 훈련원과 대양화학 흥덕인쇄 공장, 아진, 등이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온 곳이다.

기타지명

  • 잿골 : 현 항공기술 훈련원 위치로 기와집이 있던 곳으로 회덕황씨 재실집이 있는 곳. 큰잿골과 작은잿골이 있는데 큰잿골은 연수원 본관, 작은잿골은 기숙사가 들어섰다.
  • 매봉산 : 수여 뒤쪽에 위치하고 일부는 항공기술 훈련원에 편입된 지역. 매봉산 아래 항공기술 훈련원이 들어서게 되어 지역의 전설과 유사한 지역.
  • 삼성고개 : 수여에서 원남계가는 고개. 성씨가 다른 3성이 살았다하여 칭한 지명. 산봉우리가 3개라 삼봉산이라 하고, 산에 나무가 없이 하얀 흙만 있어 하얀산이라고도 불렀다.
  • 성황 : 수여에서 덕은이 가는 언덕으로 큰 배나무가가 있고 그곳에 서낭당이 있던 곳.
  • 무너미 구래 : 수여 동쪽에 있는 들.
  • 갱발 : 성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안골 : 방죽골 부락 서쪽 수여가는 계곡. 회덕황씨 재실 가는 길로 서낭이 있던 곳.
  • 쇠죽골 : 수여 넘어 원남계 가는 계곡. 소가 죽었던 곳이라 한다.
  • 안산 : 방죽골 앞산. 7봉우리가 있어 송장혈이라 한다.
  • 유고개 : 여우고개. 여의고개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시 이어성이 혈을 끊은 곳. 그 이후 이곳 주변에는 묘를 쓰지 않았다.
  • 원경주 : 성북 서쪽 공동묘지 밑의 동북쪽으로 당시 원씨가 살며 크게 번창했던 곳.
  • 구래 : 방죽골 앞들
  • 들꽃이(화석) : 화당과 경계되는 동북쪽 칠량들 끝마을. 현재 어린이 집이 있고, 좌측에 화당 교회가 있다.
  • 방죽골 방죽 : 방죽골 앞에 있는 저수지.
  • 골가실 : 원남계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육판서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고 주변에 장군석이 있다한다. 옛날 큰 부자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 상봉 : 원남계 부락앞 남쪽에 있는 산 봉우리.
  • 홍곳 : 부락 동남쪽 들.
  • 마라니 : 남계의 북쪽 화당의 인접지인 현 공장 지대를 말한다. 중앙레미콘과 일신산업 등 다수의 공장이 있어 공업지대를 형성.
  • 무중골 : 원남계에서 화산 사이의 계곡을 말한다. 무죽바위 사이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 절터 : 무중골 꼭대기 절이 있던 장소
  • 큰봉밑 : 화산부락의 북쪽 작두산의 큰 봉우리 밑.

집성

  • 수여 신평이씨가 약 250여년전 낙향 현재 8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 성남부락 보성오씨의 집성촌으로 현재 20가구 정도 살고 있다
  • 방죽골 회덕황씨가 임진왜란 시 낙향 부락을 형성 현재 30가구 정도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