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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공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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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신문편집을 하다보면 하루에 수백건씩 쏟아지는 내외신 기사의 홍수속에 지면 관계상 게재는 못하더라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매우 아쉬운 것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특히 외신기사중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이라면 한번 더 읽어보는 습성이 붙고 이것을 과연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얼마전의 베를린발 외신기사는 우리 지역, 특히 청주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임에도
분명한 것 같은데 「남의 다리 긁듯이 」별로 관심을 안가지고 반응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기사는 미국에서 발행한 「1천년,
1천인(인)」이라는 제목의 책에 지난 1천년동안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서양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 서적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독일의
쿠텐베르크(1398-1468)를 꼽았다고 독일의 유력일간지 디벨트가 보도했다는 내용이었다. 2위는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3위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차지했다. 이책은 두쌍의 언론인 부부가 수년동안 자체 연구와 학자, 예술가등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취합, 지난
1년간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1천명의 순위를 매겨 책으로 펴낸 것인데 선정 인물 대부분이 서양인이라는 점을 들어 일부 비평가들이 공정성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 면면들이 세계사에 굵직한 획들을 그려놓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쿠텐베르크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세계최초 금속활자를 발명한 인물로 공인된 현실을 보면서, 그렇다면 1444년에서 1447년 사이 독일 마인쯔에서 인쇄됐다고 전해지고 있는
금(金)세공사인 쿠텐베르크 활자로 최초인쇄작품이라 할 수 있는 「최후의 심판 」이나 또한 1450년쯤 자신이 주도가 돼 간행한 것으로 알려진
「42행서 」등 보다 무려 70여년정도나 앞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의 위상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지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억누른다. 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독일에서는 쿠텐베르크라는 인물이 금속활자를 만들었다고 기록해놓고
있는 반면, 직지에 사용한 금속활자는 발명자가 불확실 한데서 빚어진 엄청난 문화적 손실을 오늘날 우리가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청주시와 직지찾기운동본부 등이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소장돼있는 직지원본 반환과 세계문화유산등록 추진운동을 활기차게 벌이고 있는 과정에서
유네스코나 프랑스측으로 부터 문화유산등록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수를 대신한 그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지만 기왕 손을 댄 이상 직지심체요절의 주소자를 밝혀내는 역사적 고찰과 접근도 함께 진행을 시켜 다행히 결실을 얻어낸다면 직지가
세계최고금속활자본으로 인쇄된 서적이라는 사실과 함께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사람 역시 독일의 쿠텐베르크가 아니라 코리아의
누구이다라는 역사의 수정 또한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직지는 이미 미국등지에서 전시회를 가졌기 때문에 관심있는 외국사람들이라면 청주와
관련지어 생각하겠지만 아직은 그 실체조차 모르는 세계인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보여지는데 차제에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대학연구소, 언론사등에
직지에 관한 자료 홍보등을 강화해 비록 국제적으로 공인은 받지 못했지만 이러한 역사적 증거가 확실한 만큼 찬란한 한국의 인쇄문화를
눈여겨봐달라는 주문도 한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이같은 일련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성과를 거둬 내년이맘때쯤 또 누군가가 세계의 인물을 꼽거나
역사적 가치를 논할때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는 코리아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낭보를 기대한다면 너무 성급한 것일까. 덧붙여 같은 한국사람이라도
직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허다한 만큼 간단없는 활동으로 자국민부터 「우리가 제일먼저 」라는 자긍심을 길러주는것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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