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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헌사의 쟁점―③ 직지의 고단한 여정-(2)] ‘직지’복원 이뤄야 진정한 귀향 내용, 파일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제목 [한국문헌사의 쟁점―③ 직지의 고단한 여정-(2)] ‘직지’복원 이뤄야 진정한 귀향
내용 ◇다시 고향 청주로=직지는 왜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이 아니라 청주에서 인쇄 됐을까. 직지가 인쇄되기 전 이미 개성에서는 ‘상정예문(詳定禮文)’
‘남명천화 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등이 인쇄됐다. 찬란했던 고려의 인쇄문화 는 원나라의 지배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가 14세기 후반
서적포,서적원 등이 다시 설치되면서 활성화된다. 직지가 등장한 것은 바로 14세기 초·중반의 쇠퇴 기. 중앙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던 이 때에
사찰 등 변방의 인쇄 문화는 되레 활 발해졌고 따라서 직지는 개성이 아니라 청주에서 제작된 것이다. 직지의 저작권자인 우리에게는 원본 대신
복제품 2종만 있다. 박정희,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길에 선물로 받아온 것이다. 복원품이라는 말 대 신 복제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것이 사진판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직지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외규장각 문 서와 달리 직지는 플랑시가
합법적으로 수집해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직지의 복원을 통해 귀향을 시도할 수 있다. 직지를 찍은 금속활 자는 밀랍주조법으로
제작됐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는 사찰에서 범종 등을 주 조하던 방법이다. 우선 밀랍으로 본을 뜬 뒤 이를 검은 흙으로 감싼다. 흙을 건 조시킨
후 불에 구워 밀랍을 녹여낸다. 밀랍이 녹아 빠져나간 공간에 금속 용 액을 주입해 활자를 만든다. 1986년 한 전문가는 옛 방식 그대로 직지
활자 주 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 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으 로 지정됐고 최근까지 20여건의 복원작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과 의혹이 있다. 우선 주형의 재료인 검은 흙 대신 치과주조용으로 처방 된 석고계 매몰재를 사용했다. 치과용 석고가
고려시대 있었을리는 만무하다. 복원작업도 상당 부분이 하청에 의해 이뤄졌다. 이는 복원이 아니라 복제일 뿐 이다. 직지의 복원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검은 흙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최 근 청주시의 의뢰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활자본 복원사업 기초조사연구’를 하 면서 흑연,숯가루
등을 넣은 점토를 이용해 활자를 주조하는 데 성공했다. 혹 이것이 고려의 인쇄 문화를 꽃피운 검은 흙은 아니었을까. 비밀은 완전히 밝혀 지지
않았다. 계속되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직지는 고향에 돌아올 수 있을 것 이다. 조형진(강남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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