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공사 현황
제목 | 직지는 당시 청주지역 토착 글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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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서체는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통일신라~고려후기 시대의 청주지역 토착 글씨체라는 주장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직지 글씨체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처럼 서툴고 조악한 글씨가 아니라 미의식이 넘쳐나는 등 ‘매우 잘 쓴 서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서예협회 충북지회 김영소(56ㆍ사진) 지회장이 최근 원광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서예학적 견지에서 본 흥덕사본 직지서체’를 지역에 발표했다. ◆종전까지는 평가절하= 지금까지 직지서체는 글자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그 크기가 들쭉날쭉, 서예학 측면의 미적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나아가 상당수 전문가들은 당시 사회가 중국 원나라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던 점을 들어, 조맹부의 송설체 서풍이 짙게 풍긴다고 말해왔다. 조맹부(1254~1322)는 중국 원나라 대서예가로, 획에 살집이 많고 붓을 꺾어트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김 지회장은 최근 발표한 70여쪽 논문에서 직지 서체는 조맹부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고려후기 시대에 존재하던 청주지역 고유 토착서체라고 주장했다. ◆당시 4개 서체와 비교= 그는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직지와 조맹부체 그리고 운천동 사적비 사적비문,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 사뇌사 금구명문, 원흥사지 금강경 등과 직지를 일대일 방식으로 비교ㆍ분석했다. 그 결과, 직지와 조맹부 서체는 점, 가로획, 전체구도 등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점의 경우 조맹부체는 4점이 한 곳으로 모아지도록 처리한데 비해 직지서체는 동일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가로획의 경우 조맹부체는 하부의 획을 길게 끌고 나온데 비해, 직지서체는 짧게 처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구도도 뚜렷한 차이를 보여, 조맹부체는 사다리꼴 구도를 하고 있는데 비해 직지서체는 역사다리형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세내용 표참조> 이에 비해 직지와 운천동 사적지 사적비문,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 사뇌사 금구명문, 원흥사지 금강경 등은 5백년 가까운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 매우 유사한 운필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같은 고려후기에 만들어진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국보 41호)과 원흥사지 금강경의 경우 空, 我, 之, 不, 祖, 淸, 羅, 以, 綠, 等, 然, 於, 所, 後, 能 등 비교한 대부분의 글자가 서로 빼닮은 모양을 하고 있다. ◆옆줄ㆍ크기 등도 자유분방= 김 지회장은 결론으로 “점, 획, 전체구도 등을 비교할 때 직지는 원나라 조맹부체 영향을 받은 글씨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그러나 직지와 운천동 사적지 사적비문,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 원흥사지 금강경 등은 점, 획, 전체구도 외에도 옆줄을 맞추지 않은 점, 글자 크기가 자유분방한 점 등 여러 면에서 닮은꼴 모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대해 “직지서체는 비정형속의 미의식, 즉 같은 글자라도 쓸 때마다 글자 모양이 틀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전문 서예가가 아닌, 당시 스님이 수행의 일환으로 글씨를 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처음 서예를 할 때는 정형성을 추구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正’(표준성)과 ‘奇’(응용성)가 무쌍하게 변화하는 창조의 세계를 보여준다”며 “이는 지금의 대가들도 자주 사용하는 운필법으로 나의 완벽함을 깨트려 남이 들어오는 공간을 마련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직지연구 외연 확장할듯= 한편 김 지회장의 이번 논문은 직지서체 연구에 대한 전국 최초의 학위논문으로, 앞으로 직지를 연구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직지를 인쇄학 일변도가 아닌 서예학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분석, 벌써부터 직지 연구의 외연을 보다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출처 : 중부매일 2006년 07월 24일 16:3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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